다음날 아침 7시, 정신없이 눈을 떴다. 간밤에 너무 따듯하게 자서 베게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는데, 오디오를 들고 범상치 않은 옷차림으로 들어서는 선생님.

"자~아~ 이제 요가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아차, 오늘 아침에 1시간 동안 요가 수업이 있었구나. 완벽하게 잊고 있었다.
각자 매트리스를 앞에 포진시키고 양말을 벗고 신나게 몸을 비틀기 시작한다. 난생 처음 해보는 요가가 재밌다. 머리가 뻥 뚫리는 듯한, 그리고 시원한 아침을 맞이하는데 제격이었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다양한 동작도 해보고, 뭉친근육을 펴보며 하루를 맞이한다. 

오늘 아침은 연원장마을에서 직접 준비한 유기농 반찬과 국들이다. 반찬 가짓수도 실로 다양하다. 자극적인 조미료가 없이 조리되어 속도 편안한 아침상이다. 요가를 하고 식사를 하니 소화가 더 잘되는 기분. 이게 무릉도원이구나 싶다. 


창 밖에는 조금씩 싸래기눈이 내리고 있는데, 연원장 마을의 아침풍경은 탄성이 나올 정도로 멋지고 아름다웠다. 차량 한대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조용한 전원마을인데다가 마을 앞에는 마이산이 귀를 쫑긋하고 위엄을 자랑하고 있다. 

우리와 함께한 신귀종 선생님은 마을역사에 대해서는 전문가다. 역사를 듣기 좋아하는 나는, 어젯밤부터 선생님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귀담아 들었는데 그덕에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마을의 풍수지리적 특성과 산을 건너와 화를 면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을 숲.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조성한 토속신앙과 관련된 이야기 등이다.


마을 초입에는 이렇게 탑이 둘러져 있다. 이것도 토속신앙에서부터 비롯된 것으로 탑의 모양과 돌의 색을 다르게 함으로써 다양한 의미로 구분 되어진다.

 
마을정자에는 해바라기씨들이 있었다. 하나 집어들고 입에 오물오물댄다. "올해는 이상하게도 해바라기 씨 수확이 별로네요, 제대로 여물질 못했어요"라고 말하는 마을 분. 그래도 꽤 맛있는 해바라기 씨다. 매번 초콜릿 뭍혀있는 것만 먹을 줄 알았지 그냥 해바라기씨를 먹어본 적은 오랜만인 것 같다. 

하나 둘 세개 계속 오물거리니 마치 햄스터가 된 기분이 들 때쯤 얼릉 손에서 해바라기 씨를 내려놓는다.




진안 연원장 꽃잔디마을은 마을 자체 박물관도 있다.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해서 만든 마을 박물관 안에는 옛날 우리네 추억이 담겨있는 결혼사진과 옛날 전화, 옛날 농기구등 다양한 물건들이 들어차있다. 추억이 마음속에 꽉 들어차는 기분이다. 평수로 따지면 얼마 되지 않는 곳인데 말이다. 이렇게 잘 관리 되어있는 것도 대단하고 또 마을 사람들이 합심해서 이런것을 만들어 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다. 


마을 숲을 향해서 떠나는 여행, 화를 막는다는 마을숲으로 가며 이것저것 토속신앙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김동철 선생님. 여기에 있는 이 탑은 마을과 마을 사이의 경계를 구분하기도 하고 탑의 북쪽 구역에 화를 면하게 해주는 토속신앙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마을 숲은 이렇게 군데군데 하얀 소쿠리들이 설치되어있었는데, 이것은 여름에 곤충을 채집하기 위한 용도라고 한다. 진안과 정읍 자체가 다양한 곤충 식생들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라서 많은 곤충들을 연구하기에 좋다고 하는데 저렇게 그물을 걸어놓으면 곤충들이 쉽게 빠져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서 난, 공정여행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산-학-연이 클러스터를 이뤄 선순환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설치는 전북대학교에서 진행했다고 한다.


마을 한 어귀에서 이렇게 단체사진을 찍었다. 지금 봐도 천진난만한 표정이 확 드러나는 풍덩 식구들! 그리고 역시 여행하는 사람은 다르구나 느낄 수 있었던 좋은 여행 동반자 여러분들. 최연소 꼬맹이가 센터를 차지했구나!


이래서 난 호젓히 흐르는 마을 여행이 좋다. 사색하고 싶을 때 사색할 수 있고 마음이 맞는 사람과는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며 저벅저벅 걷는 동안에도 많은 소리들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마을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어떤 패키지 여행에서도 느낄 수 없는 그들의 정이 담긴 여행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우리는 오늘 연원장 꽃잔디마을과 대성마을을 지나 버스를 타고 마지막 일정인 무주 적성산으로 떠난다. 적성산 또한 내장산 용굴에 있던 조선왕조실록이 피해있던 곳으로 이곳에도 사고가 있다. 
하지만 날씨로 인하여 적성산 등반길은 막혀있었다. 우리는 그 초입까지만 가기로 했다. 


적성산으로 가는 내내 입이 즐겁다. 씹어먹는 홍삼차, 홍삼젤리, 귤 등 진안에서 제공하는 홍삼빛 향연이 1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에 끊임없는 즐거움이다. 


적성산으로 가는 도중에 비포장길을 따라 간 이곳은 공정여행 풍덩만 알고 있는 비밀루트. 물이 휘돌아가는 장관을 보여주는 곳으로 영화촬영도 했던 곳이라고 한다. 아래에 트래킹 루트가 있었는데 봄에 오면 참 재밌을 듯 하다. 앗, 그러고 보니 MBC 다큐멘터리에 공정여행 풍덩에 대해서 나온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화전을 부쳐먹었던 곳이 아마 저기인 듯 싶다. 다음에 진안을 찾았을 때는 반드시 혼자 저곳을 걸어보리.


마지막 여행지인 무주 적성산 와인동굴 앞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무주 적성산 사고가 있는데 이곳까지는 통행이 금지가 되어 이르면 내년 봄에나 열릴 것이라고 한다. 적성산 사고는 조선왕조실록이 보관될 때 치르는 의례를 재현해놓고 볼 수 있게 되어있으며 즐길거리가 많아 수학여행 코스로 꼭 들르는 곳이라고 한다. 이번에 가볼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 

이곳의 와인동굴은 머루로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습도가 잘 유지되어 최적의 와인을 만들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이곳은 사실 공정여행의 성격에 맞지 않는 곳이라고 생각하여 간단하게 몇장의 사진으로만 포스팅을 대체한다. 


와인동굴은 10분정도면 충분히 관람할 수 있다. 다양한 종류의 와인이 구비되어 있고 테이스팅이 가능하지만, 별다른 매력은 사실 못느꼈다. 원래 공정여행 측에서도 예정되어있는 코스는 아니었지만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잠깐 들른다는 목적으로 체험형태로만 진행했다.

무주 적성산 사고가 마지막 코스였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진안으로 돌아가 어죽을 먹기로 한다. 민물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어죽은 정말 맛있었다. 전혀 비릿하지 않고 마치 감자탕을 먹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민물고기들을 푹 삶아 채에 걸러 만든다는 어죽. 이것 또한 내가 손수 준비해간 수저와 저분, 컵을 가지고 먹는다. 난 공정여행 여행가니까!



이쯔음해서 현암사 직원분들은 기차예약 때문에 택시를 타고 먼저 전주로 떠나셨다. 어죽을 먹고 나니 헤어짐의 시간이 가까워 진다는 것이 아쉽고 슬프다. 혼자 여행만을 해오다가 공정여행을 처음하게 되었고, 좋은 분들을 만나 머리가 꿈틀대는 즐거움을 느꼈는데, 벌써 헤어질 시간이 되다니. 특히 덕유산 국립공원 식구들은 찐한 얘기를 했던 터라 더 아쉬움이 강했다. 서로 포옹하고 다음 덕유산을 찾았을 때 뵙기로 했다. 

우리는 진안에서 따로 출발하는 팀은 먼저 헤어지고 전주로 향한다. 전주 시외 터미널에서 헤어지는 팀, 고속 터미널에서 헤어지는 팀, 전동성당에서 헤어지는 팀 하나 둘 여행을 마치고 서로 인사하는 상황에서 찡함을 느꼈다. 1박 2일의 짧은 시간동안 많은 이야기를 공유해준 분들이 떠난다니. 

전동성당에 다다르자 대안학교 성미산학교 학생들이 터미널로 갈지 전동성당에 갈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얘들아 나같음 전동성당 갔을꺼야 후회하지 말고 전주를 좀 더 여행하다 가는게 나을것 같다" 라는 한마디를 해줬더니 알겠다며 우르르 내렸다. 너희는 정말 타고난 여행가야!

마지막 고속터미널에 도착해서 광주로 가는 분들과 서울로 가는 분들을 모두 보내고 나니 나 혼자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버스표를 알아보니 집으로 가는 버스는 이미 매진이 되어있어 다시 시외버스 터미널로 걸어가며 붕어빵을 몇개 뜯어낸다. 

그리고 전화가 왔다. 
박종석선생님 전화. 표는 잘 예매했느냐며, 인사를 못해서 아쉽다며 전화가 왔다. 
아니에요 선생님 덕분에, 공정여행을 하고 좋은 분들을 만나고 기말고사 시험의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요라고 대답했다. 이런 여행, 혼자서 하긴 쉽지 않은데 마을 주민들이 가이드가 되어 우리를 안내하고 숟가락, 젓가락 직접 구비해서 식사를 하는 마을을 생각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공정여행을 통해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사실, 전북여행을 많이 하지 못해서 고민이 많았다. 전북여행이라고야 군산, 전주밖에 해본 기억이 없다. 전주대학교에서 강연이 있을때도 진안을 들렀다가 가고 싶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 서울로 올라가며 후회아닌 후회를 몇번이고 했는지. 
그런데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진안에서, 공정여행을 해본다.

보잘것 없는 여행 블로거를 초대해주셔 감사합니다.
공정여행 풍덩 식구들. 





아참! 저 식당에 제 수저랑 젓가락, 그리고 보온병을 그대로 놓고 왔네요. 그렇기 때문에 다시 진안을 찾겠습니다.(하하) 
진안을 다시 찾는 복선을 마련하는 의도적 범행이었습니다~
다시 만날 그날까지 모두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날짜

2011. 12. 29.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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