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아가라에서 맞는 처음이자 마지막 아침.
아침 일찍 일어나보니 식탁에는 쥬스와 토스트가 올려져 있다.
기분좋게 쥬스와 토스트로 아침을 끝내고 서둘러 밖을 나섰다.

"아저씨! 어제 그 여자분은 혹시 먼저 나갔어요?"
아저씨는 어제와 같은 므흣한 미소를 보내며 대답했다.
"아직 자고 있는 것 같네요!"



제씨는 오늘 일정을 조금 느슨하게 소화하고 싶다고 했기 때문에 나 혼자 다시 떠나기로 했다. 터덜터덜 어제 걸었던 그 거리를 나와 울림이 전해져오는 폭포로 성큼 다가갔다. 딱 어제만큼의 안개와 어제만큼의 무지개들. 폭포는 그대로 그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안개아가씨호라는 관광어트랙션에 다가갈때 사람들의 웅성거림. 다시금 관광객들의 존재를 느끼게 해주듯 부지런해진 행동반경. 다시 여행의 시작이구나.

안개아가씨호의 승무원들은 나를 비롯해 수학여행온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우비를 제공하는데 여념이 없다. 배는 우렁찬 소리로 출발하고 안개속을 뚫고 이내 폭포로 서서히 다가간다.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웅장함의 끝.




어제도 들었고 오늘도 들었던 빨려들어갈 것 같던 웅장함의 끝을 드디어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머리를 자극한다.

선머리에 가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그 순간을 담기 위해 열심히 달린다.




"사진 정말 열심히 찍는군요!"
내 앞에 있던 미국인 부부. 내 모습이 신기했는지 먼저 말을 걸었다.
"네, 정말 멋진 순간이라서요!"

그들은 내 국적을 물어보았고, 사진기를 내밀었다.
"우리 삼성꺼 사진기 쓰는데! 이거 한국거 맞죠?"
반가운 마음에 유심히 살펴보니, 삼성이 맞다. 그 사진기로 부부를 사진기에 담아드렸다. 이것도 어떻게 보면 또하나의 울림일까? 여행하면서 만나는 여러 사람들, 특히 산을 가보면 부러운 것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도 결혼해서 열심히 와이프와 놀러다닐 수 있을까? 참 좋아보이는 광경에 또 갑자기 연애가 하고 싶어지네.



안개아가씨호! Thank you!


안개아가씨호는 말 그대로 '좋은 경험'이었다. 울림을 가까이서 마주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다른 경험'은 하지 않고 이것으로 끝내기로 했다. 폭포가 떨어지는 물줄기 뒤를 관광한다거나 미놀타 타워를 올라가는 것은 어쩌면 지금의 내게는 큰 사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그 울림을 확인하는 순간 그것은 그냥 요행일 뿐, 일반적으로 본다면 돈이 없어서 다른데 가기엔 글렀다라는 표현이 정확한걸까.

자금이 넉넉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기념품 2개는 꼭 사리라 맘 먹은건 어떻게 보면 가치관의 차이일거다. 이곳에서 팔고 있는 관광지 기념품 중 유난히 끌리는 것은 딱 두가지였다.
메이플 시럽과 아이스 와인.
가격비교의 달인인 내가 나이아가라 폭포의 여러군데를 돌아다녀봤을땐 생각보다 관광지가 오히려 싸다는 새로운 결론이 나왔다. 할인쿠폰을 쓰면 시내가 조금 싸겠지만, 일반적으로 구입하기에는 폭포 근처에 상점이 그래도 저렴한 편이다. 그러나 내겐 어디서 얻었는지 모를 기념품가게 할인쿠폰이 있었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 월풀로 향하는 그곳에 이 기념품 샵이 있어서 아이쇼핑만 하고 나왔다.


이제 나이아가라 폭포는 볼만큼 다 봤으니 양조장이 있는 나이아가라 온 더 레이크에 가기로 했다. 안내소에 목을 쭉 집어넣고 물었다
"Excuse me, How can I get to Niagara on the lake?(나이아가라 온더 레이크 어떻게 가요?)"
그녀는 대답했다. 원래 가는 버스가 있는데 일정치 않고 보통은 자차로 가는 편이라고,
거리상으로는 25km 정도 되보이던데 걸어서 얼마나 걸릴까 궁금했다
"Umm.. How long does take from here to Niagara on the lake?" (거기까지 얼마나 걸려요?)
여자는 재차 물었다. "걸어갈꺼야?" 난 당연하게 "그럼요 걸어가죠"
그리곤 어제 주인아저씨의 말과 똑같이 대답했다
"힘들건데요? 보통은 3시간 잡아야 할걸요" 라고 못박았다.

정말 갈 수 없는 걸까, 고민하던 찰나 지나가는 여행자의 차를 히치하이킹 해볼까도 했다.
이쯤에서 난 그곳에 정말 가야하는 목적이 있는지 다시 생각해봤다.
내가 와인에 정통해서 그곳을 가서 와인을 먹어보고 마치 요리왕 비룡처럼 천국을 맛볼 수 있는 그런 위치였나? 그것도 아닌것 같고, 아이스 와인이 뭔지는 아니?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결국은 내가 그곳을 가려했던 목적은 와인을 구입하는 것, 그 이상은 없었다는 결론이 났다.
그렇게 해서 그냥 월풀이 있는 곳까지만 구경을 하고 여행을 마치기로 했다.

월풀이 있는데로 걸어가다가 만난 레인보우 브릿지에 위치한 샵, 그곳에서 본 이니스키린 와인의 가격은 50달러 후반의 가격이었다. 생각보다 싼 가격에 어떻게 하면 구입할 수 있냐고 했더니 정말 안타깝지만 레인보우 브릿지를 통과해서 오신 관광객만이 이 물건을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아쉽게도 돌아 나왔지만, 점원의 호의와 정중함에 기분이 오히려 좋아져서 나왔다.

사람 사이를 대한다는 것은 말 끝 하나 차이구나.
오늘 또 하나를 배워간다.

터덜터덜 걸어가며 주위에 조금은 더 신경을 쓰고 자그마한거에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해본다. 열심히 사진을 찍어보고 하늘을 바라보고 조금은 더 사색을 하며 걸었다.





걷다 걷다 저 멀리서 금발의 여자가 다가오는데 내게 또 만났다며 반갑게 인사했다. 알고보니 어제 안개아가씨호 뒤에서 만났던 그 호주 여자였다. 그녀는 생각보다 여기에 오래 머문다고 말했다. 내 표정을 봤을때는 금방이라도 떠날 것 같았더래나? 그런데 오늘의 표정은 너무나 밝다며 드디어 생기를 찾았네! 보기 좋아! 라며 용기를 북돋아 준다. 그리고는 서로 악수를 하며 앞날에 광명이 깃들기를 바라며 축복을 빌고 헤어졌다. 어쩌면 이게 소위 말하는 쿨함인가?
글쎄? 여행자들은 만나고 헤어지는걸 반복하다 보니 미리 준비가 되어있다는 이야기가 더 설득력 있을 것이다.

쿠폰을 사용하기 위해 조금만 더 걸어들어가면 Culture club : souvenir city 이라는 작은 기념품가게가 나온다. 이곳에서 메이플 시럽을 싼 가격에 사고 혹시 궁금해서 점원 아주머니에게 물어봤다




"이니스키린 vidal 품종 아이스와인 구할 수 있나요?"
그랬더니 정말 미안한 표정으로 이곳에는 취급하지 못하고 있다며 굉장히 미안해한다. 그러면서 덧붙여서 말하길,
"그렇지만! 굳이 양조장까지 가지 않아도 싸게 구입하는 곳을 알아요, 제가 지도를 드리죠" 하며 손수 끄적이며 리퀴어샵을 알려준다. 지도상으로 봤을때는 숙소랑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 싸게 살 수 있다고 하니 아주머니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케이블카 밑에서 소용돌이 치는 것들이 바로 월풀.




월풀까지 가보았더니 케이블 카 밑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월풀이 있다. 월풀 세탁기, 월풀 욕조 이 모든것이 이 소용돌이를 착안해서 만들어졌다니 대단하기 그지 없다. 게다가 더 좋았던건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케이블카를 타지 않는다면 그냥 구경만 하고 와도 본전을 건질 수 있다. 하긴, 어차피 자연이 만들어 낸건데..


그리고선 다시 숙소를 향해 걷는다. 30분쯤이 지났을까 시내에 도착할 무렵 그 아주머니가 알려준 리퀴어샵을 찾아 나섰다. 사실 처음에는 헤메다가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도착할 수 있었는데, 아주머니의 말대로 이곳에서 그 와인을 구입할 수 있었다. 그것도 공장도 가격인데다가 아주 저렴하게(아까 면세점 가격과 동일) 애지간한 사람들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사기 힘든 위치에 있는데다가 내가 갔을때는 마침 딱 한병만 남았던 차였다.
기분 좋게 와인을 사고 다시 숙소로 복귀해서 짐을 쌌다. 아저씨의 말로는 제씨는 아까전에 이미 떠났다고 한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지만,



아까 호주여자에 비해서 내가 사람과 헤어지고 만나는 법은 아직 여행자로써 서툴구나. 조금은 미련이 남지만 그래도 인사를 하고 갔으면 참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저씨! 건강하시구요, 제씨가 오면 저 다시 뉴욕으로 잘 돌아간다고 알려주세요"
라고 하며 숙소 방명록에 한국어로 글을 남기고 나왔다.



그리울거야..




- 나이아가라에서 난 울림의 의미를 찾았다 -
뒤를 넘겨보니, 수많은 한국 여행자가 오고 간 흔적이 있다.
이곳에서 느꼈던 모든것도 방명록에 고스란히 전해지길 바라면서 문을 나섰다.

다시 뉴욕으로 가기 위해 터미널로. 그리고 버스가 도착하기엔 30분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계속해서 차표만 만지작 만지작. 그러다가 혹여나 내가 비행기를 놓치진 않을까 내가 기다리고 있는 이 버스가 버팔로로 가는 버스가 맞냐고 주위사람들을 은근히 괴롭혔다.

그래도 고마운게 늘 웃으면서 답해주는 여행객들.
여행자들중에 나쁜사람은 절대 없다는 건 맞는 말인것 같다.

버스가 도착하고 서서히 멀어져가는 캐나다의 모습, 폭포의 모습 그것들이 어느새 점이 되어갈때까지 잊지 못할 추억과 울림을 선사해준 그곳을 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조금은 관대해지고 행복한 마음으로 이곳을 다시 찾겠다고 마음 먹는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검문소 포트 에리에 도착했다. 근데 여기서 큰 문제가 발견될 줄이야, 검문소에서는 하얀색 비자를 요청하는데 내겐 비자가 없다. 뉴욕에 입국할 때 여권에 끼워주는 비자였는데 내가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겨 뉴욕 숙소에 두고 온 참이었다.
그러면서 여기있는 사람들은 이제 어쩔꺼냐고 다짜고짜 따지듯 물었다. 나는 고의로 그걸 놓고 온게 아니라는걸 증명해보이고 싶었지만 짧은 영어실력은 그것까지 대변해주진 못했다. 그러나 문득 뉴욕 공항에서 비자 심사를 할때가 떠올랐다. 국제학생증을 내밀자 내가 관광학과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비자를 길게 내주었던 그 기억. 그래서 그 기억을 되살려 그들에게 아무말없이 학생증을 내밀어 내가 관광학과 학생인데 그걸 모를리가 있나, 그건 실수였다 라고 누차 반복해서 말했다.

검문소 직원은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6달러를 요구했다. 비자를 다시 발급하기 위한 비용, 즉 페널티의 일종이었다. 결국 없는 돈 탈탈 털어 6달러를 냈다. 정말로 이제 내 수중에는 단돈 2달러 밖에 없다. 너무 돈을 적게 뺐기도 했거니와 설마 이런곳에서 지출할 줄은 예상도 못했다. 그러나 더욱 안타깝고 미안했던건 내 뒤에 줄 서있던 사람이 적지 않았고 내 덕에 그들도 시간적 피해를 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내 비행기 시간도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비자를 다시 받고 짐 검색을 했다. 내가 아까 보여준 행동이 우스웠는지 그곳 검문관 2명은 캐리어를 풀더니 이것저것 다 꺼내보기 시작했다. 음식이며 기념품에 옷가지 까지, 근데 조금은 기분이 나쁘게 웃으며 냄새나는것 같지 않냐는 제스춰와 함께 아이스와인을 들고 특유의 오버스런 모션까지 취해줬으니, 캐나다에 대한 이미지가 한꺼번에 추락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알고보니 그들은 캐나다 직원이 아니라 미국 측 직원. 그럼 그렇지 참 까탈스럽군..

이제 막 나가려는 문턱에서라니.
아까 말했던 말 한마디가 들었다 놨다 한다더니 지금이 딱 그 꼴이다.
사람들에게 차안에서 난 계속해서 늦어서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버스는 예상보다 40분이나 늦게 출발했다.

괜히 미안했다. 내가 여행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줬다는 사실이. 앞으로 절대 그래선 안될 일이라며 교훈으로 치자고 쿨하게 나가고 싶어도, 마음에 걸리는 사건이었던건 사실이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공항 버스를 타는 정류장으로 뛰쳐나오다 시피 했다.

너무 미안한것 하나, 그리고 공항 수속까지 단 30분밖에 남지 않았던것 이렇게 두가지 요인이 동시에 작용했기 때문이다.
무슨수로 40분이나 걸렸던 공항까지 단숨에 돌파한담, 고민하던 찰나 운이 좋게도 무정차 급행으로 공항까지 가는 203번 버스가 왔다. 옳다쿠나 하고 타니 역시 20분도 되지 않아 공항에 도착했다. 그 시간 출국하기 딱 10분 전이었다.

땀을 쥐고 열심히 뛰어 게이트에서 내 예약번호를 부랴부랴 누르니 갑자기 화면에 나타나는
"OOPS! TICKET" 이라는 글귀,
수속시간이 지나버려 탑승할 수 없다는 안내원의 말이 따라왔다.
그럼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그 안내원은 이렇게 말했다


"그럼 다음거 타면 되시는데 왜 걱정이세요"

생각지도 못했던 답변이었다. 이대로 난 한국에 가지 못하는 걸까 하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미국에서의 비행기는 마치 버스가 지나가면 다음 것을 타도 되는 그런 느낌의 교통수단이었던 모양이다. 자리도 애지간하면 남는다고 하니 다음 것을 타고 미리 지금 수속을 밟으라고 권유해 얼떨결에 캐리어까지 맡기고 말았다. 정말 그렇게 가도 되긴 되나보다.


힘겨운 버팔로에서 뉴욕행.




비행기는 정확히 그 시간에 출발했다. 깜깜해져가는 어둠속에 녹초가 된 나는 창밖을 볼 여유도 없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고작 1시간 비행. 비행후에도 일어나지 못할만큼 푹 잤던 듯 싶다. 옆 사람이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 눈을 떠보니, 다시 JFK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다시 뉴욕이구나, 마치 나이아가라 여행은 한낮 꿈인듯 느껴졌다.
터덜터덜 밤이라 조용한 공항을 나서 퀸즈에 있는 숙소에 도착하니 제대로 녹초가 되었다. 짐은 그대로 방도 그대로 있었다. 다만 그것들이 내일을 위해서 가지런히 쌓여져 있을듯, 그렇게 잠이 들려고 하는 찰나 할머니가 한국에 있는 할아버지께 몇가지를 전달할게 있는데 대신 가져다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난 귀중품만 아니면 된다고 흔쾌히 이야기 했는데 옷가지가 담긴 캐리어 하나를 주셨다. 무거운 캐리어도 아니고 내 수화물 허용량은 2개까지였기 때문에 수용할 수 있었다. 게다가 어드미션으로 집으로 갈 수 있는 차비정도는 받게 되었으니 조금은 다행인 듯 싶다.

잠을 자는데, 믿겨지지 않는다. 이제 뉴욕도 작별인사를 해야 하다니. 지금 단지 잠을 자고 있는 이곳이 뉴욕이라니. 언제 다시 와볼 수 있을까? 조금은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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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일찍일어나 출발해야 하는지라 부랴부랴 일어났다. 비행기는 1시 비행기지만 일찍 수속해서 기다리지 않으면 원하는 자리를 선택할 수 없을 뿐더러 짐도 많아 조금은 느긋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식구 모두에게 그동안 고마웠다고 인사를 하고 그곳 꼬마들과 지하에 세들어사는 누나, 그리고 일본인 형까지 잘 있으라고 한 뒤 미련없이 그곳을 떠났다.

캐리어 두개를 끌고 성큼성큼 걸어가는데 버스정류장에서 일본인 요스케 형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어떻게 다시 왔냐고 물어봤더니 안그래도 어차피 디자인 실에 가봐야하고 해서 짐이나 들어줄까하고 나왔단다. 덕분에 74 broadway역까지 편하게 왔다. 사실 거기까지만 가면 만사 오케이였는데 그저 고마운 요스케형. "앞으로도 행복하게 뉴욕생활 하세요" 하며 헤어졌다.

자메이카역까지 와서 다시 타게 되는 에어트레인. 사실 얼떨결에 문이 열리는 에피소드로 공짜로 타게된 에어트레인이지만 그래서 그런지 조금은 더 기억에 남는 무임승차 미끌어짐이다. 그 미끌어짐을 기억하고자 영상으로 담고 또 담는다. 이제 이 풍경도 느끼지 못하겠지 하며, 작별인사를 대신한다.

"창문 자리로 주세요"
"손님 혹시 영어랑 일본어 가능하세요? 지금 창문자리가 벌써 꽉 차서요"
"그럼 비상구 석을 주시겠다는건가요? 그럼 저야 감사하죠"
"그럼 그걸로 드릴께요"

얼떨결에 받은 비상구석, 창문을 바라보면서 뉴욕을 떠날 수 있게 된 것도 그저 감사.
두다리를 쭉 뻗고 13시간을 비행할 수 있다는 것에도 그저 감사하다.

비행기에 탑승하고 서서히 나를 태운 단단한 은색 새는 이곳에서 나를 떠나보낸다.
그곳이 점점 '점'이 되고. 차들이 선이되고, 뉴욕시가 면이 되는 그 광경을 보면서 조금은 가슴이 아려오고 눈물이 날 뻔했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것들이 작아지는 슬픔과 스쳐지나가는 에피소드들, 너무나도 기억에 많이 남을거다. 내 인생에 가장 창대했고 많은 것을 안겨준 내 첫 미국여행이자 해외여행. 나 혼자 모든것을 해결해야만 했던 도전의 첫걸음.

그것들은 나를 키웠고 강하게 만들어줬다.

고맙다. 뉴욕 잊지 않을게.



내가 지구 위에 멈춰있는 것 같아.





뉴욕 떠난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배링해에 진입하고 있다.



뉴욕을 떠나 정말 편하게 나리타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아까는 비행기에서 얼마 보이지 않았던 한국 사람들이 나리타 트랜짓 플랫폼에는 많이들 모여있다. 동생에게 줄 바나나 모양 화과자를 사고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를 기다린다. 대기실 창밖으로는 많은 비행기들이 뜨고 내리고 하고 있구나.

너무나도 감사하지,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예상치 못하게 비지니스석을 제공받았다. 내 옆에 탔던 유럽에서 오는 대구 아주머니의 유럽 무용담과 내 뉴욕 무용담이 한껏 버무려진다. 그리고 코넬대학교에 대해서 물어보는 집요한 일본인 승무원까지, 우리는 서로 여행얘기 하기에 바빴다. 그 시끄러움을 조금 잠재워 준건, 에비스 맥주 한캔.



그동안 너무 노곤했던걸까, 아님 사랑하는 내 조국 대한민국에 품에 안겼다는 기분에서 였을까, 부산을 지나는 상공에서 나는 잠이 들었고 인천에 그렇게 도착했다.

"엄마 나! 한국 왔어!"
집에 전화하니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
용케도 살아 돌아왔다며, 그리고 장하다며 어서 집으로 오라는 말에 왈칵 눈물이 났다.
애지중지하던 할머니의 캐리어를 소포로 붙여 보내고, 카드에 있는 마지막 잔액까지 모두 뽑아 아주 깔끔하게 집으로 가는 리무진에 올랐다.
 
쳇, 제길 마음 한켠이 왜 허전한걸까. 난 한국에 왔는데 왜 또 다시 떠나고 싶은거지
알수없는 마음에 하염없이 창문을 바라 봤다.

그래, 어쩌면 계속되는 그런 갈망이 날 여행자로 이끌었겠지.
어쨌든 좋다. 당분간은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할 수 있으니까.
타국에 있다보면 철이 든다. 부모님께 참 잘해야겠다고, 몇번을 생각하는지.

오랜만에 화려하게 수놓인 네온사인을 바라보니
그래도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구나라는 걸 느꼈다. 저런 사소한 풍경조차 이제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
고마워.

모든 것들이.
내 인생이.
그리고 나침반을 선사해준 수많은 여행들이.




INFORMATION


나이아가라 폭포 - 월풀 (1시간 소요)
LCBO(리퀴드 전문 샵) http://www.lcbo.com/main/en.shtml
온타리오 정부에서 운영하는 리퀴드 샵이다.


호스텔(Backpacker's international inn) - 터미널에서 가깝습니다!
219 Huron Street (@ Zimmerman)
Niagara Falls, ON L2E 2G6
(905) 357-4266

+ 덧, 최근에는 나이아가라 온더 레이크까지 가는 저렴한 버스가 생겼고 와이너리를 자전거 투어 가능하게 해놓았다고 한다.



날짜

2010. 8. 31.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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